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차기 반도체 생산 거점과 관련해 “한국에서 안되면 해외에서라도 지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차기 반도체공장이 한국이 아닐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최 회장은 10일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닛케이포럼 ‘한일특별세션’ 대담 후 기자들과 만나 용인 클러스터 4기 완공 이후 차기 공장 계획과 관련해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공장 건설이 필요하다며, 국내와 해외를 포함해 조건에 부합하는 입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최 회장은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용인의 반도체 팹 4기 구축이 다 끝나면어딘가로 가지 않을 수는 없고 준비가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 공장 입지와 관련해 “어디에 어떻게 짓겠다는 것은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도록 하겠다”면서 “일단 지금은 용인 클러스터를 짓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해외 투자 가능성을 열어놔 추가 반도체공장 입지가 국내가 아닐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안 되면 해외라도 해야하는 상황 아니냐”면서 “무조건 한국에만 짓겠다는 게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지역으로 한정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 구성원 등 반도체 시장과공급망이 전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뉘앙스로 언급했다.
이달 말 청와대에서 열리는 재계 총수 초청 간담회에서 반도체 공장 추가 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이 나올 지 주목된다. SK하이닉스는 현재 구축 중인 용인 클러스터 외에 청주를 AI 반도체 메모리 생산기지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20조원이 투입된 청주 신공장인 M15X가 지난 4월부터 가동에 들어갔고, M15X 인근에 19조원이 투입되는 패키징 팹 P&T7도 올해 4월 착공, 2027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 회장은 김민석 국무총리가 “한국서 되게 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공장이 들어서려면 인프라가 엄청나게 필요하다”면서 “전력과 부지, 인력, 용수 등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해 호남지역에 반도체팹 라인을 신규 건설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이 같은 발언은 최근 정치권에서 반도체 설비 투자를 호남권이나 충청권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진입한 점을 감안,팹라인이 아닌 후공정,패키징공장을 호남지역에 새로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성장 전략의 대전환을 이뤄낼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조만간 공개하겠다고 밝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추가 반도체공장 설립과 관련해 양사와 현 정부간 사전 교감이 어느정도 수준까지 무르익었는 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 회장은 그러나 호남지역 반도체공장 설립을 의식한 듯, 특정 지역 투자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고객이나 다른 나라가 우리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도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고, 그게 우리 실력이다”고 언급했다.
최 회장은 최근 한국을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의 협력에 대해서도 소회를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협력 범위는 계속 발전할 것으로 본다”며 “젠슨 황과는 AI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큰 생태계가 필요하고 엔비디아 주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반도체 초과 이익 분배 요구와 관련해서는 “우리의 경영 목적은 이해관계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주주와 구성원, 사업 파트너, 국민 모두가 이해관계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행복을 나누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며 “세금을 많이 내거나 더 많은 투자와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주주자본주의 근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노조나 정부차원에서 초과이익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기업경영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뉘앙스로 언급해 주목된다.
최 회장은 일본시장에 대한 투자 소신도 밝혔다. 키옥시아(옛 도시바 반도체의 낸드 플래시 사업) 투자금 회수와 관련한 질문에 그는 “어디서 돈을 벌었다고 해서 모두 가져가버리면 상대국 입장에서는 좋게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상대를 배려하고 협력할 분야를 계속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키옥시아 경영참여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최 회장은 “안티트러스트(반독점)규정 때문에 경영에 관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키옥시아는 경쟁기업인 만큼 경쟁 룰을 지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경영참여는 어렵지만 다른 형태의 협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대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의 주요 주주다. 지난 2018년 베인캐피탈이 주도한 한미일 컨소시엄에 참여했으며, 현재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키옥시아 지분 가치는 약 14조원(투자금 4조원)대다. 키옥시아가 일본 반도체 산업의 전략자산인 만큼 현실적으로 인수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나, 그렇다고 해서 투자금을 회수해 버리는 조치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인수나 투자회수 대신 지속적인 ‘윈윈’방안을 추구하겠다는 스탠스다.
최 회장은 전날 닛케이포럼 대담에서 한국과 일본이 반도체·AI·에너지 분야 협력을 확대해 새로운 국제질서의 ‘룰 메이커(rule maker)’가 돼야 한다며 양국 협력 의제를 한데 모으는 ‘빅 텐트’ 구상을 제안했다. 그는 “시장이 좀 더 통합되고 하나로 돌아가는 풍토가 중요하다”며 한일 경제협력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 최태원,3년내 일본에 AI팩토리 건설하겠다 전격 공개
한편 최 회장은 3년내 일본에 차세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인 ‘AI 팩토리’를 짓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이 반도체 생산 기지를 해외에도 확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 구체적인 국가를 지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 회장은 10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인터뷰에서 “2028~2029년 가동을 목표로 일본 현지 기업과 AI 팩토리 건설을 논의 중”이라며 “GW(기가와트)급 전력 공급이 가능한 장소를 찾고 있다”고 공개했다.
최 회장은 “일본은 반도체 생산국인데다 전력과 재료 등 필요한 생태계가 모두 갖춰져 있는 훌륭한 후보지”라며 “일본은 반도체 공장보다 AI 팩토리가 중요하고, AI를 활용해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한 인프라나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AI팩토리는 AI 전용 데이터 센터. SK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2027년 한국에서 첫 AI 팩토리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GW 규모로 확대해서 아시아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을 밝힌바 있는데, 그 해외 진출의 첫 지역이 일본으로 낙점한 것이다.
최 회장은 AI 산업이 확대되면서 반도체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는 경쟁적으로 AI에 투자하고 있다”면서 “현재는 대부분이 BtoB(기업간 거래) 투자이지만 개인용 AI 에이전트 수요가 늘면서 연산 능력은 계속 고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회장은 메모리 반도체 수급 불균형을 우려하면서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을 강조했다. 그는 “양국의 경제 안보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세계 정세가 변하면서 양국은 힘을 합칠 수밖에 없고 생존을 위한 비상사태”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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